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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말

 

 

 

금여란은 바닥에 뒹굴었다. 정확하게는 “처박혔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꼴사납게 메다 꽂혔다. 모래흙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지잉-하고 울리는 머리와 접질린 발목 중 어떤 것에 먼저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목을 다치지 않은 게 용했다.

장대비가 내린 지 하루가 넘은지라 세상 모든 곳이 흙탕물로 가득 차 있었다. 특등급 비단으로 만든 금성설랑포가 꼬질꼬질하게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런 적은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흔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금릉은 물론이거니와 남사추, 남경의도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사대세가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자신은 금 종주로서 수련에 매진했으니 자주 고전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그 이상한 일이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그 꼴 참 사납구나. 일어나라.’

불현듯 외숙의 말이 들려오는 듯하여 일어났다. 지금 이렇게 할 때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렇게 계속 얼이 빠져서는 정말 그 앞에 갈가리 찢어지겠지. 금릉은 요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제 몸의 여섯 배는 될 듯한 저 집채만 한 몸집을 가지고, 썩은 미역 같은 가지를 펄럭이고 있다. 남경의가 재치를 발휘해 이름 붙인 ‘미역 요수’는 자신들을 향해서 콧김을 내뿜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코 대신에 정수리부터 기다란 미역 다발만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남경의는 가쁜 숨을 내쉬며 미역의 후방을 노리려고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후방이 어딘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빙빙 돌고 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남사추는 그런 남경의를 엄호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금릉은 이 바보 같은 상황에 금세 미간을 좁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하등 문제가 아니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흙탕물을 씻어내릴 새도 없이, 그는 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데구루루 굴렀다. 바다에서 미친 듯이 들이치는 폭풍우는 아까 자신을 밀치고 공격을 대신 받은 남사추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어검을 하는 것도 막고 있었다.

 

“남사추! 물러나!”

“물러날 수 있겠어? 여기서?”

 

그가 악을 써댔다. 검으로 서걱서걱 검은 미역 줄기를 잘라낸다. 남사추가 방어할 수 없는 범위를 남경의가 막아줬다. 금여란은 이를 악물고 뛰어갔다.

 

“얘들아! 사랑싸움은 지금 하지 말고, 악, 고맙다, 죽을 뻔했네, 제발 나한테도 신경 써줄래?”

“사랑, 흐억, 헉, 싸움이 아니거든? 이게 사랑, 거기 피해!”

“아, 네. 알겠습니다아.”

 

사실 이렇게 엉망인 날씨에 공중에서 검을 타고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야렵을 떠나면 안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그런 수칙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수사는 별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평생 지킬 수 있다면 그자는 오히려 수사로서 체면이 없는 자일 테다. 살면서 한 번쯤은 모두 위기상황을 맞게 되기 마련이니까. 마치 지금처럼.

남경의는 그래도 어검을 무리하게 해보려다가 빗물에 미끄러져 목이 부러지기 직전에 금릉에게 목덜미를 붙잡혔다. 객기였다.

파도가 무섭게 치고 있었다. 검게 변한 바다는 인간이 대적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귀가 먹먹했다. 금여란은 진흙이 묻은 손으로 골이 울리는 뒤통수를 쓰다듬으려다 지금 자신이 거지꼴임을 깨닫고 손을 밑으로 내렸다.

여름에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날씨가 바뀔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곳에 이렇게 강력한 해귀가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자꾸만 빗물이 때리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눈이 아팠다. 아마 지금쯤 몇몇 집은 지붕이 날아갔을 것이다. 자신들이 짐을 맡긴 민가는 무사하길 기도하며 남사추, 남경의, 금릉 셋은 다시 어영부영 자세를 고쳐잡았다.

구양자진은 지금쯤 발을 깨끗이 닦고 안온한 집에서 딸의 옹알이나 듣고 있겠지! 금릉은 짜증이 치솟았다.

물론 그날 구양자진이 아픈 갓난아이를 달래느라 제대로 잠들지 못한 것은 그 이후 안 사실이었다.

어쨌든, 여행을 마칠 때 즈음 다시 운심부지처로 가기 위해 들린 이곳은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다. 요수를 퇴치하기 위해 수사가 이런 벽지로까지 올까 의심스러웠으며, 그보다 먼저 그를 부를 만한 돈을 마련하기에도 어려워 보였다. 주민 태반이 농업과 어업 둘 다에 종사해야만 하는 처지에 있는, 잘 들어보지조차 못한 작은 마을.

그러나 그들은 피로가 쌓여서 잠에 금방 들고 말았고, 갑자기 빗소리 사이로 굉음이 울렸을 때 산사태가 일어난 줄로만 알았다. 밖으로 뛰쳐나와보니 난동을 부리는 저 해귀를 마주친 것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그들은 촌장이 읍소하는 것을 뿌리치고 떠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렇게 강력할 줄은 꿈에도 그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지역 풍습으로 공양미와 함께 적당한 처녀를 바치며 해귀에게 먹이를 제공하면서 ‘키워’왔던 것이겠지. 안 그러고서는 이런 원념과 사기는 있을 수 없었다. 고소 남씨가 관리한다고는 하지만 이 지역은 해적도 많아 영 껄끄러운 지역이었다.

제 숙부가 세웠던 감시탑은 숙부가 죽고 난 이후로 어영부영 그 조직이 와해한지라 특히 해적과 함께 요수로 받는 피해가 점점 커졌으니 어떻게든 방편을 찾아야 했겠지. 그래서 처음부터 발도 들이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지만, 설마! 설마! 이건 남경의도 남사추도 생각지 못한 사태였다. 동영에서 온 무뢰배들도 아니고, 자신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해귀와 마주칠 일이 있을까! 아마 돌이켜보건대, 이 지역을 지나가는 마음씨 좋은 수사가 흔쾌히 해귀를 처리해주겠다고 해도 금방 잡아먹히기에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떠돌이 수사들은 한 명, 많아봤자 부부 동반으로 두 명이다. 그리고 아주 대단한 실력을 갖춘 사람은 흔치 않다. 그리고 금여란은 객관적으로 셋 모두 괜찮은 실력을 갖췄다고 자부했다. 그런데도 이 꼴 이 모양이다. 안 봐도 뻔하게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꽥.

금릉은 부어오르는 발목의 통증을 애써 참으며 해귀를 응시했다. 썩은 미역 타래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눈이 어디 달렸는지, 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역 같은 가지를 잘라도 다시 재생하는 것이 점점 느려지고 있단 사실만이 희망이었다.

해귀는 미역 같은 몸을 나풀나풀 내려 앉히며 지상으로 착륙했다. 부유하는 몸뚱이를 지탱하는 데에도 모종의 힘이 필요했으니 점점 힘이 떨어져 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그들은 직감적으로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임을 이해했다.

먼저 ‘쓰러지는’ 자가 진다.

그는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검에 영력을 주입하자 세화는 더 버틸 수 없다고 웅웅 울어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억센 가지를 베어냈다. 팔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자 곧 손목이 통증을 호소했다.

그리고 각개전투로 상황이 돌아가자 다급해진 미역 다발은 혼란스럽게 가지를 뻗어나갔다. 그리고 불행히도 가장 먼저 그 피해를 당한 건 남경의였다.

“악!”

“남경의!”

“경의야!”

고꾸라진 채 미동이 없었다. 금릉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흐르는 건지, 피가 흐르는 건지, 아니면 비가 흐르는 건지 구별은 불가능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남경의를 다른 곳으로 누일 새도 없이 금릉의 손은 가지를 쳐내고 자르느라 바빴다. 남사추는 남경의의 척추가 무사하기를 빌며 빈틈을 노렸고, 몸을 한 바퀴 팽그르르 돌리며 썰어냈다. 이미 물에 푹 젖은 가죽신이 무겁고 싸늘한 냉기를 뿜어냈지만, 그는 진흙을 발끝에서 튀기며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나가 이제는 몇 가닥 남지 않은 덩어리를 위협했다. 고소 특유의 기교는 접어놓은 채 단정하고 정확한 찌르기와 베기가 이어지며 파괴를 목적했다.

그리고 금여란은 비틀거리는 남사추를 한 손으로 끌어안은 채 요수의 뱃가죽을 뚫고 세화를 쑤셔 넣었다.

“죽었어?”

“죽었어. 끝났다.”

금릉은 세화를 몇 번 더 쑤셔 박고는 빼냈다. 그리고 세화를 손에서 떨구고는 그대로 남사추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췄다. 남사추는 처음에 입술에 남은 진흙 맛이 싫은 듯 몸을 비틀다가 검을 떨어뜨린 채 금릉의 콧잔등에 자신의 코를 비볐다. 전투 뒤의 흥분이라 할 것도 없었다. 완전히 연소하어 둘은 기진맥진했고, 잠과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연모하는 대상에게 닿고 싶은 마음은 막을 수 없어 서로에게 기대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맡겼을 뿐이다.

몸에 달라붙은 천은 척척하게 젖어 체온이 끔찍하게 낮아지고 있다고, 빨리 온기를 찾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금릉은 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여 36.5도의 온도를 가진 이를 품 안에 넣었다. 남사추의 입술은 추위로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하면 안 돼.”

“진실은 묻어버릴 수 있어. 사추, 입 벌려.”

“금, 여란… 아니, 절대 못 해.”

“내가 난릉 금씨의 독자인 건 지금 누구도 모를 거야. 네가 기산 온씨의 생존자인 것도 몰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숨결을 앗는 마음은 급했고 이가 살짝 부딪혔다. 금릉이 낮게 웃었다. 서로를 향해 갈구하는 그 손짓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역동적인 욕망으로 기인하는 것이었다. 어느 것보다도 황홀한 족쇄처럼 남사추는 금릉의 혀를 가쁘게 옭아매었다. 숨이 오갔다.

첫 입맞춤은 날카롭게 그들을 옥죄었다.

쏴아아- 하는 파도의 포말이, 그들을 가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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